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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02 야구를 사랑(?)한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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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Yagoora( http://yagoo.tistory.com/ )


주말에 지인들과 만나서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다가, A가 뜬금없이 샤라쿠를 언급하였다. 김재희의 '색, 샤라쿠'에서 주장하듯이 신윤복이 샤라쿠일 가능성에 대해서 물어온 것이다. 솔직히 아직 그 책을 읽지 않은 관계로 뭐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이번에는 신윤복인가!?'라는 느낌이었다. L교수가 '샤라쿠 = 김홍도'라는 설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은 L교수의 책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샤라쿠를 신윤복이나 김홍도라고 주장하는 두사람이 어떤 근거로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가타부타할 수 없는 난처한 입장이었다. 게다가, 한권은 소설이 아닌가.

토슈사이 샤라쿠는 에도시대인 1794년 5월부터 1795년 1월까지 약 10개월간 활약하면서 우키요에를 남긴 정체불명의 화가이다. 일각에서는 램브란트와 벨라스케스와 함께 세계 3대 초상화가라고 평가되고 있을 정도이다. 일본 내에서도 그가 누군인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들이 있지만, 확실한 사실은 하나도 없다. 뿅하고 나타나서 뿅하고 사라진 화가가 샤라쿠로, 그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그가 남긴 우키요에뿐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신비의 화가인 토슈사이 샤라쿠가 신윤복이라는 것은 미나모토 요시츠네가 살아서 칭기즈칸이 되었다는 설만큼이나 뛰어난 소설적인 상상력을 발휘한 것일 뿐이다(샤라쿠 = 김홍도설은 L교수가 진지하게 거론한 것으로 알기에, 그 근거를 모르는 상황에서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신윤복이나 김홍도가 샤라쿠일지는 알 수 없지만, 신윤복과 김홍도가 스파이 활동을 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전공이 역사가 아닌 관계로 정확한 역사적인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김홍도의 경우에는 정조의 밀명을 받고 대마도에 몰래 건너가서 지도를 그렸다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신윤복은 1811년에 사신들과 함께 대마도에 갔다고 한다. 화가인 신윤복이 대마도에 간 이유는 조선에는 이런 뛰어난 화가가 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마도의 전체 모습이나 전략적 요충지의 방어 상태 등을 일목요연하게 알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으로, 사진기가 없던 시절에 그림만큼 확실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문학도 지도도 스파이 활동을 위한 수단

우리들은 흔히들 영화 등의 영향으로 스파이라고 하면, 007시리즈나 미녀삼총사와 같이 무술 등에 능한 사람들로 생각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또한, 일본 고유의 스파이라고 할 수 있는 닌자는 온몸을 올 블랙 등의 천조각으로 숨기고, 은신술이나 둔갑술, 암기 등을 능숙하게 다루는 집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닌자나 스파이라고 해서 모두다 무술이나 총포 등을 능숙하게 다루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파이나 닌자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정보에 얼마나 접근 가능한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하이쿠의 대가로서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마츠오 바쇼이다. 마츠오 바쇼의 대표적인 기행문으로 동북지방의 여행기인 '오쿠노호소미치'가 있다. 그런데, 이 때에 바쇼를 수행했던 제자인 소라가 남긴 일기가 1943년에 발견되었다. '소라의 일기'를 20세기 일본 문학의 최대 발견이라고 난리법석을 떨었을 정도였다. 당연히 마츠오 바쇼의 연구가들은 밥값을 하기 위해서, '오쿠노호소미치'와 '소라의 일기'를 대조하였는데,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쿠노호소미치'와 '소라의 일기'와 그 행적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상당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뒤 정황을 살펴봤을 때에 마츠오 바쇼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행적을 숨겼다는 결론이 나왔다. 왜 마츠오 바쇼는 자신을 행적을 숨겨야만 했던 것일까? 그것은 마츠오 바쇼가 에도막부를 위해서 동북지방을 염탐한 닌자였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영화나 만화 등으로 인해 닌자라는 존재가 과장되어서 초인 비슷무리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중세 당시에 닌자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자유롭게 합법적(?)으로 전국을 돌아다닐 수 있는 예능인이나 문인 등이었다. 막부나 중앙의 권력집단으로서는 지방의 번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감시하거나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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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시성 詩聖으로 불리고 있는 마츠오 바쇼

중앙 집권 체제가 아닌 일본이기에, 중앙 정부인 에도 막부가 각 지방(번들)에 관료를 파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에도 막부로서는 자연스럽게 지방의 번들을 출입할 수 있는 존재들이 필요하였고, 문학이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유람하는 문인들이나 각종 기예를 선보이던 예능인들이 그 역할을 수행한 닌자였던 셈이다.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와 비교할만한 존재로서 일본에는 이노 타다타카가 있다. 그는 일본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최초로 완벽한 일본 전도를 완성(그가 죽은 후에 지도가 완성되었는데, 에도 막부는 그의 죽음을 숨기고 타카하시 카게야스 등에게 지도를 완성시키도록 하였다)하였다. 그가 측량 등을 이유로 자신의 번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군사 시설이나 경제 상황 등을 볼 수 있었기에, 지방의 다이묘들은 자신들의 장점과 약점이 새어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절부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에도 막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그를 죽이거나 행동을 방해하거나 할 경우에는 막부의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기에 지방의 번들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속수무책이었다.

다이묘들은 자신들을 무장해제시킬 수 있는 중요한 부분들을 지도에서 빼거나 못 본 것으로 해주는 댓가로서 호화로운 접대는 물론이고, 뇌물까지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지도가 완성될 경우에는 자신들에게도 한부씩 나누어주는 것으로 타협이 이루어졌지만, 실제로는 이노 타다타카의 지도는 에도 막부만이 소유하였다. 지도 제작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도운 지방의 다이묘들은 여전히 일본의 정확한 모습이나 자신의 지역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잘 모를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언제던지 적이 될 수 있는 에도 막부가 자신의 번들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게 된 상황이 되었다. 결국,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었다.

본업은 스파이, 부업이 야구였던 선수

마츠오 바쇼나 이노 타다타카 등과 같은 사례가 야구계에서도 있었다. 1934년에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 등이 포함된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이 일본을 방문하였다. 1934년에 이은 2번째 미일 야구 대회가 열린 것이다. 일본은 1931년의 만주 침략과 1933년의 국제연맹의 탈퇴 등으로 소원해진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야구를 이용한 것이다. 반면에, 미국 역시 미일 야구 대회에 참가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미국과 일본 사이에는 태평양이라는 광대한 바다가 있어서 일본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던 미국은 미일 야구 대회를 합법적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야구복이 아닌 정장 차림으로 유명한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현 오클랜드)의 코니 맥 감독이 이끈 14명의 선수 중에는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은 물론이고, 조로한 파워히터 지미 폭스, 레프티 고메즈, 찰리 게링거, 에릭 맥네일 등 한시대를 풍미한 스타 플레이어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전 포수인 프랭키 헤이즈의 백업으로 모 버그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모 버그는 1921년에 브룩클린 로빈스(현 LA 다저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를 하였지만, 15년간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면서 통산 663경기에 출장해서 타율 0.243, 6홈런, 206타점 등을 기록하였다.

모 버그의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
Career
G AB R H 2B 3B HR RBI SO BB SB CS BA OBP SLG
1923-1939
663
1813
150
441
71
6
6
206
117
78
11
5
.243
.278
.299

야구선수로서 모 버그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성적을 남긴 무명이지만, 그의 진정한 재능은 야구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발휘되었다. 프린스턴대학 등을 졸업한 그는 10개국 이상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일본에 배로 오는 2주동안에 공부한 것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의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는 믿기 어려운 말도 전해지고 있다. 그가 정확하게 언제부터 정보 기관을 위해서 활동했는지는 불명확하지만, 최소한 1934년에 있었던 미일 야구 대회 때에도 그가 일본을 방문한 이유는 야구가 아닌 다른 것에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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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에 미일 야구 대회에 참가한 메이저리그 올스타팀과 일본의 전일본 선발 팀

일본팀과의 합동 청백전을 포함해서 치루어진 18경기에서 모 버그는 거의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게다가, 몇경기에는 야구장에조차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배트와 미트 대신에 사진기를 든 그는 야구장 근처의 군사 시설 등을 염탐하거나 토쿄 일대의 모습을 찍거나 하였다. 실제로, 그가 찍은 사진과 정보는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미국이 토쿄를 공습할 때에 유용한 자료로서 활용되었다고 한다.

일본 뿐만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유럽에서도 스파이로서 맹활약을 하였다는 말도 적지 않다. 그가 핵물리학자를 찾거나 독일의 군사시설을 폭파시키거나 하였다고 주장하는 연구가도 있다. 실제로 2008년 8월 14일에 CIA의 전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설립된 OSS에 소속된 공작원 약 2만 4천명의 명단이 공개되었는데, 아카데미상을 받은 존 포드 감독과 함께 그의 이름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정확하게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문득 야구선수와 스파이라는 이중생활을 한 모 버그의 삶에서 (연상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 '컨페션'이 생각난다. 조지 클루니의 감독 데뷔작으로, 조지 클루니와 샘 록웰, 줄리아 로버츠, 드류 배리모어 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척 배리스의 '위험한 마음의 고백 ; 공인되지 않은 자서전'을 영화화한 것이다. ABC 방송국의 연출가이자 제작자였던 척 배리스는 이 책을 통해서 비공식 CIA 요원으로서 35명을 죽였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모 버그와는 달리 그가 실제로 비공식 CIA 요원이었는지, 또한 그 주장이 사실인지를 증명하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그의 주장은 사실일까? 그런데, 이 영화의 핵심은 척 배리스의 말이 진실 여부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거대한 쇼일 수도 있고, 반대로 쇼라고 믿은 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따리 장사를 하는 자립형이나 생활 밀착형이라는 독특한 수식어를 달고 있는, 게다가 앞뒤가 잘 맞지 않는 간첩이 잡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소설이나 영화가 더 현실감 있게 느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출처 : Yagoora( http://yagoo.tistor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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