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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11 홍족(인디언)의 전쟁약사와 홍족영웅 성난말
출처 : 홍족(인디언)의 전쟁약사와 홍족영웅 성난말

홍족(인디언)의 전쟁약사와 홍족영웅 성난말 - www.crazyhorse.org

[일러두기]=======================================================
① 본 열린백과(오픈백과)에선 북미대륙의 원주민을 붉은 피부의 사람들, 홍족(紅族)이라고 한다. 인디언(Indian)이란 말은 콜롬부스가 북미대륙을 인도(India)로 알고 홍족을 인도사람이란 뜻으로 부른 것이다.

② 성난말은 백인들의 사진기가 자신들의 영혼에게 해악을 끼치는 행위로 보고 평생 단 한장의 사진도 찍지 않았다. 성난말의 초상은 다른 홍족의 사진을 참고로 상상한 것임을 밝힌다.

③ 사용한 삽화나 사진의 저작권은 모두 저작권자(삽화가,사진가)에게 있음을 밝힌다.

④ 가능한 외래어는 국어연구원의 순화 용어들을 사용하며 순화 용어가 없을 경우에도 강제적으로 우리말 순화 용어로 만들어 쓴다. (예) Gold Rush - 황금잡이

⑤ 단, 미국 지명과 조약 명칭에 인디언이란 단어가 들어간 경우는 바꾸지 않았다.
 (예) 양도하지 않는 인디언 영토 - Unceded Indian Terri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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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미대륙의 원래 주인들, 홍족의 멸망사

15세기 유럽인들이 신대륙이라고 발견한 곳은 사실 새로 발견한 땅이 아니었다. 홍족의 입장에서는 조상대대로 살던 곳인데 어찌 그곳이 새롭게 발견한 땅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지극히 자신들의 관점에서만 새로운 대륙이다. 그말은 마치 사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곳인 듯한 유럽의 호들갑이다. 이런 호들갑과 콜롬부스가 인도(India)로 알고 인도인이란 뜻에서 부른 인디언(Indian)이란 호칭을 즉각 바꾸지 않은 것만으로도 잔인한 이방인들의 전조가 보였다 하겠다.

홍족은 유럽인들을 손님으로 맞이하여 낯선 대륙에서 굶주리는 손님에게 담배, 칠면조, 낚시법, 옥수수씨앗, 재배법을 나눠주었다. 지금도 추수감사절에 미국인들은 칠면조와 옥수수빵을 먹지않는가?!

홍족의 도움도 잊은 채, 백인들은 홍족을 미개한 종족으로 보고 문명화라는 미명아래 그들의 삶에 관여하였으며 후에는 그들의 영토마저 넘본다. 광할한 북미대륙에 거주하던 드넓은 마음의 홍족에게 사기를 치고 뇌물로 분열시키고 계약에 익숙치않은 그들과 불평등조약을 맺고 교묘히 파기하는 등의 지극히 '문명인'다운 방법과 강력한 화기로 학살하는'비문명인'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여 홍족의 영토를 잠식해갔다.

"백인을 믿지마라. 끝까지 배신하는 종족이다."

홍족은 뒤늦게야 백인은 애초부터 생각 자체가 자신들과 다르단 것을 안다. 손님으로 위장한 침입자들과의 전쟁은 19세기후반까지 400년간 이어졌다. 19세기후반쯤엔 이미 북미대륙의 동부와 서부는 백인의 차지였고 중부 평원만 홍족의 영토로 남아있었다. 일부러 백인들이 동부와 서부만 차지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내버려둔 이유는 중평원의 험한 환경과 남북전쟁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중평원엔 강력한 전투홍족들이 포진해서 정복에 따르는 출혈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탐욕스런 백인들은 금을 찾아 중평원마저 넘보고 있었다!


2. 약탈자이며 침입자인 백인들의 황금잡기(Goldrush)

1840년이 지나, 대륙의 동서로 압박받던 홍족은 점점 좁은 지역에 갇힌다. 1851년, 현재
의 몬태나 주(州) 버지니아에서 금광을 발견하자, 미정부는 그전에 맺었던 비교적 그나마 공평한 계약인 '라라미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금광 주변에 새로운 도로와 요새를 건설한다. 1868년, 미정부는 본인들조차 무슨 뜻인지 모르는 애매한 용어들로 홍족에게 '2차 라라미 조약'을 강요한다. 추장들은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른 채 서명한다. 조약 중에는 '대 수우족 거주지역(The Great Sioux Reservation)'을 정해서 홍족의 이동을 강요하는 내용도 있었지만 홍족들이 무력으로 거부하자 '양도하지 않는 인디언 영토(Unceded Indian Territory)'라고 무슨 뜻인지 모를 애매한 구역으로 남겨둔다.(나중에는 갖겠단 소린가?!)

▲ 제7기병대 장군, 조지 커스터. 항상 긴머리라 홍족은 그를 긴머리(Long Hair)라고 불렀다.


1870년, 대평원 홍족의 땅 중심부인 '검은언덕'에서 금을 발견하자 미정부는 다시금 달아 오른다. 4년뒤, 인디언 학살로 악명높았던 조지 커스터 장군이 이끄는 제7기병대를 보내 금의 매장량을 조사하게 한다.

"검은언덕에는 풀뿌리에도 금이 묻어 있다!"

이 한마디에 검은언덕으로 몰려든다. 하지만 검은언덕은 홍족에게 금덩이 이상의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홍족의 세계 중심지였고 위대한 정령들과 만나는 성지이자 고향이었다.

과거 유럽이 자신들의 성지 예루살렘이 이슬람국가령에 있다고 되찾기 위해 전쟁을 벌였듯, 성지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안다면 침범하지 말았어야 했다. 홍족들의 수호전쟁은 너무도 당연했다. ( 사실 이슬람에게도 예루살렘은 성지다. 그곳에서 그들이 유럽인들의 성지를 더립힌 것은 결코 아니었고 오히려 유럽인들보다 관대했다. 하지만 본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줄인다.)

1876년, 커스터의 제7기병대는 성난말(Crazy Horse)이 이끄는 수우족과 샤이엔족의 연합군한테 전멸한다. 그러나 백인은 증원군과 화력을 끊임없이 보급했고 홍족들은 도망다닌다. 미정부는 검은언덕을 이름좋게 '매입'하기 위해, 이미 보호구역에서 살고 있는 평화주의 홍족들을 꼬시고 윽박지른다. 백인의 벌목과 철도로 인해 들짐승의 수는 희박했기에 백인의 식량원조없이는 보호구역내 홍족은 굶어죽는 상황이었다.

1877년, 백인은 검은언덕을 손에 넣는다. '2차 라라미 조약'의 조항중에 '홍족 성인남성 3/4이 서명않는 조약은 무효다.'라는 것이 있었지만 적대적 홍족은 이미 조약의 수혜자가 아니라며 평화적인 홍족의 서명만 받아 '강제 매입'한 것이다.


3. 홍족의 수난과 치욕

이후는 본격적인 홍족의 치욕이 이어졌다. 광대한 영토를 자유롭게 말달리던 그들은 옴싹달싹도 할 수 없을 크기의, 그것도 백인들이 황무지로 만든 땅에 '보호'란 이름으로 갇혀 산다. 보호구역으로 들어오길 거부하면 끝까지 찾아가 학살한다. 결국 추위와 굶주림에 남은 적대파 홍족들도 하나 둘 보호구역으로 들어간다. 그 끝에 제7기병대를 전멸시켰던 성난말의 저항군이 있다.


4. 홍족의 영웅, 성난말(1842-1877)

▲ 성난말은 사진기를 백인들의 저주라 보고 사진을 찍지 않았다. 위는 상상한 모습.

성난말은 오글라라족으로 그의 아버지 벌레(Worm)는 성인으로 대접받는 지혜로운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브룰레족이었다. 어릴때 이름은 '고수머리'로 어릴때부터 몸집이 작고 야위었으며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었지만 용기가 필요할 땐 누구보다 용감했고 지혜로웠다. 열두살때 추장 곰정복자(Conquering Bear)가 미군들의 총에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분개하지만 백인 전체에 대한 복수심은 아니었다. 스물셋(1855)때 블루 워터 전투에서 소소한 분쟁 수준이 아닌 대규모의 홍족과 백인의 전투를 본다. 어려서 백인 아이들과 친했던 그는 이 전투 목격을 계기로 백인들의 잔인함과 흉폭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복수심을 키운다. 스물다섯(1857) 에 윈드강 근처의 부족을 상대로 일어난 전투에 참여해서 용맹을 떨치고 '성난말'이란 이름을 받고 전사로 거듭난다. 29살에는 적대관계인 스네이크족을 상대하는 전투에 참가한다. 1865년 프래트 브리지를 공격하기 위해 편성한 유인부대를 처음 이끌고 이후에 벌어지는 백인과의 전투에서 그의 유인부대는 연승행진한다. 몇달뒤, 미정부 대군이 파우더 강 연안의 라코타 수우족을 기습하지만 오히려 쫓겨 가고 성난말은 도주병을 수차례 추격하며 공격한다.

다음해 1866년 전투에서 페터먼의 부대를 몰살시키고 백인들은 그 전투를 '페터먼 학살'이라고 부른다. 이후에도 단 한번도 패하지 않고 1876년 6월17일, 미군들의 전투방식을 도입해서 로즈버드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며칠뒤, 홍족학살꾼 조지커스터가 이끄는 제7기병대와 리틀빅혼전투를 벌이고 대승리로 이끌지만 정복이 뜻대로 되지않자 화가 난 미정부가 홍족소탕작전을 선포하며 평화적 홍족마저 살해한다. 성난말은 타협은 없다고 되뇌이지만, 화력의 열세와 백인이 물소의 씨를 말려서 이어지는 연승 속에서도 상황은 점점 힘들어진다. 그가 추위와 아사직전의 굶주림에 시달리는 동족들의 모습에 가슴 아파할 때, 거주할 곳을 선택할 수 있게 해준다는 미군의 약속에 투항한다. 그렇게 투항하고 1877년 9월 5일, 많은 전투를 함께 했던 용감한 전우 작은거인(Little Giant)이 미군에게 붙어 그를 배신한다. 작은거인이 성난말을 붙들고 있는 사이, 일개의 기병대원이 총검으로 그의 등을 깊숙하게 찌르고 홍족의 영웅 성난말은 숨을 거둔다.


5. 현대의 홍족 실태와 성난말을 기리며
 
오늘날 미국엔 700만의 홍족 후예들이 있으며 그중 순수혈통은 140만으로 추산한다. 그 중 40만은 285개 연방 홍족 거주지역 혹은 주립 홍족 거주지역에 있다. 지난 30년간 미정부는 거주지역을 철폐하는 등 동화를 시도했으나 아직까지 홍족의 혈통은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궁핍한 지역은 흔히 말하는 흑인 거주구역 할렘(Harlem)이나 빈민굴(Ghetto)이  아니고 바로 홍족 거주지역이다. 1929년 라코타 수우족은 연방 법원에 검은 언덕의 소유권 반환을 소송한 상태고 지금까지도 갈등은 이어지고 있다. 홍족은 점차 미국사회에 동화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생각으로, 미정부의 과거반성에 이은 호의적인 대우가 없는 한 그들의 미래는 어둡다.(독립국가를 세우지 않는 한)

"백인들에게도 영웅이 있듯, 우리 홍인종(Red People) 에게도 대단한 영웅이 있다."

1939년 수우족 추장 서있는곰(Standing Bear)과 다른 홍족 추장들은 검은언덕 러쉬모어 산에 미국 4인의 대통령을 조각한 보글럼의 조수인 지올코프스키를 초대하여 위와 같이 말하며 성산 검은언덕에 성난말을 새겨줄 것을 부탁한다. 추장들이 들려주는 성난말의 전설에 감동한 지올코프스키는 성난말에 대한 연구와 홍족의 삶에 대해 고찰하며 7년의 세월을 보낸 후에 그들의 요구를 수락한다. 홍인종들의 요구대로 성산(聖山) 검은언덕에 새기기로 하고 1947년 검은언덕에 간 지올코프스키는 작업을 위한 거주지와 절벽의 길을 7개월동안 직접 만든다. 그리고 이듬해, 폭약을 터뜨리며 작업을 시작을 선포한다. 그의 나이 40세에 174달러의 비용만 갖고 도전한 대작업이었다. 애초엔 30미터 규모의 조각이었으나 후에 바위산 전체를 조각하고 일대를 홍인종 종합 지구로 개발키로 한다. 이 거대한 작업을 거의 혼자서 하느라 얼굴만 5년동안 조각하고 60만톤이상의 돌들을 혼자서 일일이 날랐다. 1982년 그는 이 거대한 작업을 채 끝마치지 못하고 74세로 숨을 거두지만 그의 아내와 자녀, 손자, 증손자 등이 유지를 이어받아 작업해간다. 1987년에는 마침내 자금이 조성되고 일꾼이 생겼다. 1998년 작업50주년행사가 열릴 때쯤 성난말의 상체모습이 드러났지만 아직도 완성에는 수십년이 더 걸린다고 한다.

(조각에 드는 비용은 기부금과 소형 성난말 조각의 수익금으로만 충당한다.)
(그들의 성산에 미대통령 4인의 얼굴을 새긴 이유는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정복과시인가?!)

무려 58년이나 계속되고 있는 조각상...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성난 말) 조각

1/34th 크기 완성 예상 모양의 크레이지 호스상

1939년 조각가 코자크 지올코브스키는 성난말의 부족인 수우족 추장(서있는 곰: standing bear)으로부터 한통의 서신을 전달받는다.
"우리 추장들은 백인에 대한 소망이 있다. 우리 홍인(Red man)도 백인처럼 위대한 영웅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으면 한다"
인디언들의 간절한 바람을 읽은 코자크는 그 때로부터 높이 169m, 길이 201m의 `성난말`의 용맹한 모습을 조각하기 시작한다. 이는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얼굴을 새긴 러시모어 바위얼굴을 능가하는 작업이었다.

수우족 추장(서있는 곰: standing bear)으로부터 한통의 서신을 받은 코자크는 몇 년간 Crazy Horse의 일생과 인디언들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아주오랜 옛날...
성난 말과 인디언들은 물소를 사냥했다.
물소고기는 그들의 음식이었고
뿔은 숟가락 이었으며
가죽은 그들의 신발, 옷 그리고 집이었다.
물소는 그들의 전부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디언의 땅에 물소 시체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2년 동안 370만 마리의 물소가 죽었다. 그중 355만 마리는 백인의 손에 죽었다.
그리고 백인들은 인디언의 땅에서 황금을 발견했다.
“그곳은 풀뿌리에도 금이 더덕더덕 붙어있다.”
그들은 약속 했다.
인디언의 땅을 빼앗지 않겠다고.

“백인은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지킨 것은 단 하나다.
그들은 우리의 땅을 먹는다고 약속했고, 우리의 땅을 먹었다. ”
-인디언 붉은 구름-

그들은 성난 말에게도 땅을 요구했다.
성난 말은 말했다.
“자기가 걸어 다니는 땅을 팔아먹는 사람은 없다.“

산딸기가 익는 6월.

땅을 사수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났다.
성난 말은 인디언 사냥꾼 커스티를 물리치고 승리하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풀이 마르는 달 9월.

굶주림에 지친 성난말과 그의 부족은 백인에게 투항했다

포로가 된 그는 백인에게 매수된 동료가 덫을 채우려는 것에 저항하다가
백인 군인의 단검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그의 나이 35살이었다.

성난 말은 운디드니(Wounded Knee,상처난 무릎)에 묻혔고,
13년 후 운디드니에서는 인디언 마지막 대학살이 일어났다.
인디언 350명중 300명이 무참히 학살 되었다.

파란만장한 인디언의 삶을 연구한 코자크는 조각상 작업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1948년
첫 망치질이 시작되었다.
작업한지 50년 만인 ,
1998년 성난 말의 얼굴상만 간신히 완성되었다

"나는 인디언 후원자가 아니다.

단지 진실을 전하는 돌 속의 이야기꾼일 뿐이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살려면

과거의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높이 169m, 길이 201m. 러시모어 바위얼굴을 능가하는 작업.
하지만, 그가 가진 돈은 고작 174달러 뿐이었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혼자서 산꼭대기까지 741개의 통나무 계단을 만들었고,
얼굴 윤곽을 만드는데는 무려 5년이 걸렸다

시간이 갈 수록 인디언의 얼굴을 조각하는
그를 향한 비난과 조롱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는 말하였다.

“모든 사람은 그들만의 산이 있다. 나는 내 산을 조각하는 것이다.“

그는 74세에 죽기 전까지 35년간 740만톤의 돌을 깼고,
그가 죽고 난 후에 그에 가족들의 의해 Crazy Horse의 얼굴상이 완성되었다.

 이 소문이 전해지면서 크레이지 호스 기념재단이 만들어졌고,
미국 전역에서 수만 명의 후원자가 생겼다.

현재, 조각상의 왼팔과 말의 머리를 만드는 작업이 계속 되고 있다.

www.crazyhorse.org (코자크와 크레이지 호스에 대한 홈페이지)

위대한 대통령의 얼굴이 있는 러시모어(rushmore)의 27km 떨어진 곳에서

'성난 말'이

지금,

미국을 내려다 보고 있다...

 
1987년 Ruth Ziolkowski가 성난 말의 얼굴을 조각하기에 앞서 9층 높이의 암석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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