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외계인

History 2009. 4. 18. 22:55 |
출처 : 루리웹

고대의 외계인
고대에 나타난 외계인의 존재
이집트 신전 부조에 나타난 외계 문명


이집트 아비도스 신전의 부조에서 현대 문명에서나 사용되는 모형이 발견되었습니다.
위 그림의 왼쪽이 부조이고 오른쪽이 확대한 부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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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헬리콥터, 비행기 또는 반중력 자동차, 잠수함, 수송선이 새겨져 있음이 보입니다.
이제 이집트인이 어떻게 현대 건축 기술로도 만들기 힘든 피라미드를 지을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바로 외계인의 지식과 기술, 도구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마야 문명의 무덤 판석에서 발견된 로케트



마야 파칼왕의 피라미드 무덤에서 판석이 발견되었는데 특별한 조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림은 파칼왕이 사후 세계로 가는 모습을 그린 것 같은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가로로 놓고 보면 기계장치 안에서 조정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장치 내의 엔진과 조정관 그리고 바깥의 화염분사로 볼 때 로케트를 타고 날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들은 왕이 죽은 뒤 그들의 신인 외계인이 있는 달나라로 가는 상상도를 그린 것 같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고대 벽화에 나타나는 외계인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킴벌리 산맥의 한 동굴로 들어가보면 3m가 넘는 존재가 보입니다.
붉은 눈에 코나 입은 보이지 않고 헬멧을 썼는데 머리 주변에서는 빛이 납니다.
몸은 우주복으로 보이는 붉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것은 확실하고 외계인이 내려와서 신 같이 추앙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의 모습은 그레이 중에서 상위 종족인 큰 그레이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또 다른 동굴에도 우주인 벽화가 있습니다.
원주민들에게 '두 창조자'로 알려진 벽화의 주인공들은 헬멧을 쓰고 가슴에 줄무늬가 선명한 유니폼을 입고 있습니다.
손에든 것은 막대자같은 측량기구로 보입니다.
이와 같이 원시문명을 살던 원주민들에게 외계인은 창조주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벌리 지역에서 발견된 원주민들의 대표적인 암벽화는 '완드지나(Wandjina)' 라고 하는 신입니다.
그는 선사시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특별한 존경을 받던 가장 영적인 존재였습니다.
첫 번째 벽화와 비슷한 고등 그레이로 보입니다.





소련 베기스탄 휘르가난에 있는 고대벽화

 
소련 베기스탄 휘르가난의 고대벽화에 우주복을 입은 우주인과 UFO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집트 벽화의 외계인

< 안 보이시면 Click!! >

   
이집트 기카라 고분의 벽화를 보면 하단에 외계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집트 문명과 종교에 외계인이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피라미드 건축도 가능했습니다.


에콰도르에서 발견된 우주인 인형
에콰도르에서 발견된 우주복을 입고 있는 외계인 인형입니다.
아폴로 우주인과 같이 헬맷을 쓰고 있습니다.








수메르 유적에서 나온 외계인 석상


오늘날 이라크의 바그다드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는 옆의 석상은 지금으로부터 4000년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수메르 유적에서 나온 이 유물은 외계인을 연상시키고 있습니다.
수메르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바벨론 문명의 근간이 되며,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그들 문명에 외계인이 개입했음을 보여줍니다.



나츠카 라인( Nazca Line)

페루남부 지방의 사막 지대인 나스카 평원에는 하늘에서만 볼 수 있는 거대한 그림들이 펼쳐져 있다.
우리 나라 제주도의 약 1/4에 해당하는 이 지역에는 새, 거미, 물고기, 원숭이, 도마뱀, 나무, 꽃 등의 동식물
그림이 100여개 이상 있으며 삼각형, 사각형, 원 같은 도형과 무엇인지 모를 직선, 곡선 등도 어지럽게 뒤섞여 있습니다.
동식물 그림 중 큰 것은 길이가 300m에 이르며 직선은 똑바로 8km나 뻗은 것도 있습니다.

< Click!! >

    
위 사진은 왼쪽부터 큰손 모양, 외계인, 새, 거미 입니다.


외계인의 유골과 유물

외계인은 대부분 예전에 지구에 살았으며 고도의 문명을 유지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외계인이라는 말 보다는 본토인이라고 하는 것이 어울릴 지 모르겠습니다.

마야에서 발견된 외계인 유골

1970년대 퀴엔데즈가족은 고대 마야의 문명지에 있던 한 동굴을 들어갔습니다
'반듯하게 누워있던' 2개의 이상한 유골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곧장 사진을 찍고, 배낭에 2개의 해골들을 넣은뒤 산밑으로 내려온 로페즈 퀴엔데즈씨는 '이게 뭐냐'며 베낭에
있는 해골들을 그곳 원주민들에게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위 사진 왼쪽은 마야 문명 메리다에서 발견된 외계인 해골이고, 중간은 발견 당시의 모습, 오른쪽은 해골을 바탕으로한 스케치 모습으로 그레이와 닮아 있습니다.

그곳의 원주민들은 상당히 무서워하며 '당신이 지금 손에 들고있는것은 '별의 아들' 머리이니, 당장 그분의 머리를 다시 동굴에 가져다놓지 않으면, 당신은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가지 못할것'이라는 경고를 했다고 합니다.
유골은 작은 키에 팔이 무릎 밑까지 닿는다고 합니다.
위의 해골들과 유골들은 1980년대초, 멕시코의 메리다주 원주민정벌당시 압수한뒤 1990년초부터 메리다주의 마야박물관에 보관을 하였다고 합니다.


잉카 문명지인 페루에서 발견된 외계인 유골

  
위 사진 왼쪽은 잉카 박물관에 보관중인 외계인 해골이고, 중간은 외계인으로 추정되는 고대 이집트 익네이톤왕의 부인 네퍼티티(투탄카멘의 모친)이고 오른쪽은 영화 콘헤드의 사진입니다.


거인족과 소인족의 유골

미국의 네바다주 러브락시에는, 오래전부터 원주민들로부터 전해내려오는 '키가 3미터가 넘는 빨간머리의 거인종족들'에 관한 전설이 있습니다.
1911년, 러브락시에 광산을 만들던 인근의 광부들은, 러브락시에 있던 어느 이름없는 산에서 입구와 출구가 없는 어느 이상한 동굴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조로 누가 깎아 만든것같은' 형체로 남아있던 동굴을 조사하던 광부들은, 동굴안에서 빨간 머리를 가지고 있던 이상한 거인들의 미라들을 수두룩하게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정부에 보고한 광부들은, '워싱톤에서 왔다는 고고학자들이' 그 미라들을 가지고 어디론가 가버리는 광경을 목격한뒤, 다시는 그 미라들에 관한 소식을 들을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위 사진 왼쪽은 같은 동굴에서 발견된 길이 50cm 해골이고 오른쪽은 미국의 와이오밍주에서 발견된 소인족 미라입니다.
거인족에 관한 얘기는 성경에도 나오며 골리앗의 키는 3m를 넘었다고 합니다.

1932년, 와이오밍주에서 금을 찾아 헤매던 광부들이 동굴안에서 소인족 미라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미라가 발견이 되었던 지역에는 오래전부터 '키가 약 40cm정도 밖에 안되는 소인들'에 관한 전설이 있었다고하며, 위의 미라는 실제로 앉은 키가 약 20cm밖에 안 되었다고 합니다.
1979년, 뉴욕의 고고학 박물관으로 옮겨졌던 이 미라의 X-Ray를 찍어본 고고학자들은, 조그만 미라의 몸 속에 완벽한 뼈의 구조와 내장이 보존이 되고있던 사실을 밝혀낸뒤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일본 앞바다 수중 도시

1996년 일본 오키나와시 요나구미섬 근처에서 다이빙 연습을 하던 잠수부들은 우연히 수심 25m 지점에서 이상한 형상의 지반을 발견합니다.
이 구조물을 예사롭지 않게 본 잠수부들은 몇장의 수중 사진을 촬영한뒤 곧바로 일본의 한 TV 방송국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위 사진은 지하 수중 도시의 사진이며 정교하게 돌을 다듬은 흔적이 보이고, 이 내용은 우리나라 방송국에서도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며칠 후 TV 방송국의 관계자들과 함께 잠수를 하여 사진등을 촬영하였던 잠수부들은 발견되었던 암석들이 모두 조각을 한듯 정교히 깎여있었고, 요새 건축법과 비슷한 방법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후에 이루어진 암석의 지질조사에 따르면 이 지반들은 적어도 5,000년, 많게는 25,000년동안 물속에 침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곳은 예전에 물에 잠기지 않았던 곳으로, 외계문명이 발달했던 곳으로 보입니다.


500만년 전의 신발 발자국

이 사진은 1968년 미국 유타주에서 발견된 500만년전의 신발 발자국 화석입니다.
이 신발화석은 1968년 분석을 위해 영국의 국립과학연구소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발표된 정체불명의 신발화석은 500만년전의 것으로 판명이 되어 충격을 주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10만년(사실은 6,000년)이라고 생각했던 고고학자들은 당황한 나머지 이 화석은 가짜라고단정지었습니다.
인류가 출현하기 이전에 고등 생물체가 존재했었고 그들은 고도의 문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벨론 유물에서 나온 베터리

 
위 사진 왼쪽은 이라크에서 발견된 고대 바벨론의 배터리이며 오른쪽은 그 구조도 입니다.
외계인들은 고대인에게 나타나 신처럼 추앙 받았으며, 그들에게 문명을 전해 주었습니다.


러시아에서 발견된 200 만년 된 금속 부품 발견

1991년, 우랄산맥에 금을 캐는 작업을 벌이던 러시아의 광부들은, 얼어붙은 땅속에서 나사와 볼트의 모습을 한, 아주 단단한 쇠로 만들어진 괴 물체들을 발굴하게 됩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광부들은, 망치와 드릴등으로 쇠붙이들을 깨뜨려보려는 시도를 했지만, 5mm 에서 10cm사이 크기의 괴물체들은 전혀 부서 지지가 않고 오히려 기계들이 손상되는 괴반응을 일으켜, 당시 발견된 쇠붙이들이 보통 쇠가 아니었다는것을 알아내었다고 합니다.

 
곧장 모스코바 대학의 화학실험실로 옮겨진 괴 물체들은, 화학반응 실험을 하게 되었다고 하며, 당시 카본실험으로 년대를 추정한 결과, 괴물체는 적어도 제작년도가 200만년이 넘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위의 뉴스를 전세계의 언론에 발표한 러시아의 과학자들은, 서방언론으로부터 '200만년전 인간은 금속기술은 커녕 존재를 하지않았다'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영국과 미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등에 보내진 샘플을 조사한 서방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조사한 쇠붙이에서 똑같은 화학반응이 나오자 모두 이 사실을 시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쇠붙이들을 조사한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화학교수들은 거의 모든 쇠붙이들이 텅스텐 성분을 가지고있는 사실을 발견해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도 기술 문명을 가진 고등 생물체가 존재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인류와 함께 살아온 외계인

티벳 지방에 살고 있는 외계 소인족

1947년 영국의 고고학자 로빈은 그의 동료가 보여준 '인도에서 가지고 온 정체불명의 외계 디스크'를 보여주며 인도의 한 불교사원에서 티벳의 달라이라마가 준 히말라야의 드조파 유물이라는 말을 합니다.
로빈 이반스는 중국의 바얀 카라 울마산맥을 탐사하기 위해 티벳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14번째 환생한 달라이라마의 설명을 통하여 드조파 외계 부락의 진실을 알 게 됩니다.
영국의 드조파 탐사팀은 달라이라마가 만들어준 지도를 가지고 탐험을 떠납니다.
하지만 네팔과 티벳의 가이드들이 그곳에까지 동행을 거부하여 탐사가들이 직접 찾아 나섰습니다.
12일동안 헤매던 탐사팀은 대원 두명을 잃고 탐사를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그들이 하산하는 길에 키가 120cm정도로 보이는 이상한 사람들의 무리를 발견하고 그들을 ?아가 서방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소인국을 발견하게 됩니다.

 
위 사진 왼쪽은 신추앙추에 생존하는 외계인 혼혈 후손이고, 오른쪽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금속 디스크입니다.
그들은 그 당시에도 고대 중국인들의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산에서 나물등을 채취해 살아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모두 손가락이 6개였으며 외모 또한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다고 합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상형문자를 쓰고 있었으며, 그들은 그들의 부족을 드조파인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의 보고서는 영국 정부에 의해 공개 되어지지 않다가 1974년 로빈박사가 1974년 사망한 뒤 언론에 공개되었습니다.
1995년 중국의 언론에서는 큉해지방 산맥의 동쪽에 있는 신추앙추에 외계인과 지구인의 혼혈인들이 120여명 생존하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보도하였습니다.
드조파인들은 어른들의 키가 90-110cm정도였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발견되어진 디스크들을 보면 몇 만년 전의 지구의 과학기술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유럽 귀족 가문 중 일부

영화 '13번째 전사'에는 중세시대에 식인 괴물이 나오고, 동화에는 이 나오는데 모두 근거가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영화 '13번째 전사'는 마이클 크라이튼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시체를 먹는 사람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인간과 모습이 다른 식인 괴물들은 중세 때까지 유럽에 살면서 인간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특히 렙탈리안 외계인은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켜 사람 모습을 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방영됐던 TV 영화 V는 이러한 그들의 습성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당시 예쁜 여자 외계인이 살아 있는 쥐를 잡아 먹는 것을 보고 많은 분이 경악하셨지만 사실입니다.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도 주위 사람 모습이 파충류로 변하는 것을 보고 미쳐가는 변호사 아내를 보여줍니다.
중세 유럽에 혜성 같이 나타나 부와 권력을 거뭐진 귀족 가문이나 황실은 외계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럽에는 '푸른피'라는 귀족 프리메이슨 조직이 있는데 자신들이 외계인 혈통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올리버 스톤이 각본을 쓴 영화 코난에서도 사람이 파충류로 변하는 shape-shifting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실제로 고대 유럽은 사탄(뱀)숭배 종교와, 인신제사와 각종 신비주의적인 마법과 의식이 횡행하였습니다.
고생대에 삼엽충이 등장한 것은 약 5억년 전입니다.
중새대의 들어 공룡이 등장했고 쥐라기(2억 1300만년~1억 4400만년 전)와 백악기에 각종 공룡과 고대 생물이 전성기를 이룹니다.
그러다가 약 6500만년 전에 지구에 거대한 운석이 충돌했는데, 이로 인한 열파와 먼지구름으로 공룡은 멸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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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Yagoora( http://yagoo.tistory.com/ )


주말에 지인들과 만나서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다가, A가 뜬금없이 샤라쿠를 언급하였다. 김재희의 '색, 샤라쿠'에서 주장하듯이 신윤복이 샤라쿠일 가능성에 대해서 물어온 것이다. 솔직히 아직 그 책을 읽지 않은 관계로 뭐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이번에는 신윤복인가!?'라는 느낌이었다. L교수가 '샤라쿠 = 김홍도'라는 설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은 L교수의 책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샤라쿠를 신윤복이나 김홍도라고 주장하는 두사람이 어떤 근거로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가타부타할 수 없는 난처한 입장이었다. 게다가, 한권은 소설이 아닌가.

토슈사이 샤라쿠는 에도시대인 1794년 5월부터 1795년 1월까지 약 10개월간 활약하면서 우키요에를 남긴 정체불명의 화가이다. 일각에서는 램브란트와 벨라스케스와 함께 세계 3대 초상화가라고 평가되고 있을 정도이다. 일본 내에서도 그가 누군인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들이 있지만, 확실한 사실은 하나도 없다. 뿅하고 나타나서 뿅하고 사라진 화가가 샤라쿠로, 그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그가 남긴 우키요에뿐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신비의 화가인 토슈사이 샤라쿠가 신윤복이라는 것은 미나모토 요시츠네가 살아서 칭기즈칸이 되었다는 설만큼이나 뛰어난 소설적인 상상력을 발휘한 것일 뿐이다(샤라쿠 = 김홍도설은 L교수가 진지하게 거론한 것으로 알기에, 그 근거를 모르는 상황에서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신윤복이나 김홍도가 샤라쿠일지는 알 수 없지만, 신윤복과 김홍도가 스파이 활동을 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전공이 역사가 아닌 관계로 정확한 역사적인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김홍도의 경우에는 정조의 밀명을 받고 대마도에 몰래 건너가서 지도를 그렸다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신윤복은 1811년에 사신들과 함께 대마도에 갔다고 한다. 화가인 신윤복이 대마도에 간 이유는 조선에는 이런 뛰어난 화가가 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마도의 전체 모습이나 전략적 요충지의 방어 상태 등을 일목요연하게 알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으로, 사진기가 없던 시절에 그림만큼 확실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문학도 지도도 스파이 활동을 위한 수단

우리들은 흔히들 영화 등의 영향으로 스파이라고 하면, 007시리즈나 미녀삼총사와 같이 무술 등에 능한 사람들로 생각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또한, 일본 고유의 스파이라고 할 수 있는 닌자는 온몸을 올 블랙 등의 천조각으로 숨기고, 은신술이나 둔갑술, 암기 등을 능숙하게 다루는 집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닌자나 스파이라고 해서 모두다 무술이나 총포 등을 능숙하게 다루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파이나 닌자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정보에 얼마나 접근 가능한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하이쿠의 대가로서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마츠오 바쇼이다. 마츠오 바쇼의 대표적인 기행문으로 동북지방의 여행기인 '오쿠노호소미치'가 있다. 그런데, 이 때에 바쇼를 수행했던 제자인 소라가 남긴 일기가 1943년에 발견되었다. '소라의 일기'를 20세기 일본 문학의 최대 발견이라고 난리법석을 떨었을 정도였다. 당연히 마츠오 바쇼의 연구가들은 밥값을 하기 위해서, '오쿠노호소미치'와 '소라의 일기'를 대조하였는데,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쿠노호소미치'와 '소라의 일기'와 그 행적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상당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뒤 정황을 살펴봤을 때에 마츠오 바쇼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행적을 숨겼다는 결론이 나왔다. 왜 마츠오 바쇼는 자신을 행적을 숨겨야만 했던 것일까? 그것은 마츠오 바쇼가 에도막부를 위해서 동북지방을 염탐한 닌자였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영화나 만화 등으로 인해 닌자라는 존재가 과장되어서 초인 비슷무리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중세 당시에 닌자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자유롭게 합법적(?)으로 전국을 돌아다닐 수 있는 예능인이나 문인 등이었다. 막부나 중앙의 권력집단으로서는 지방의 번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감시하거나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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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시성 詩聖으로 불리고 있는 마츠오 바쇼

중앙 집권 체제가 아닌 일본이기에, 중앙 정부인 에도 막부가 각 지방(번들)에 관료를 파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에도 막부로서는 자연스럽게 지방의 번들을 출입할 수 있는 존재들이 필요하였고, 문학이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유람하는 문인들이나 각종 기예를 선보이던 예능인들이 그 역할을 수행한 닌자였던 셈이다.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와 비교할만한 존재로서 일본에는 이노 타다타카가 있다. 그는 일본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최초로 완벽한 일본 전도를 완성(그가 죽은 후에 지도가 완성되었는데, 에도 막부는 그의 죽음을 숨기고 타카하시 카게야스 등에게 지도를 완성시키도록 하였다)하였다. 그가 측량 등을 이유로 자신의 번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군사 시설이나 경제 상황 등을 볼 수 있었기에, 지방의 다이묘들은 자신들의 장점과 약점이 새어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절부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에도 막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그를 죽이거나 행동을 방해하거나 할 경우에는 막부의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기에 지방의 번들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속수무책이었다.

다이묘들은 자신들을 무장해제시킬 수 있는 중요한 부분들을 지도에서 빼거나 못 본 것으로 해주는 댓가로서 호화로운 접대는 물론이고, 뇌물까지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지도가 완성될 경우에는 자신들에게도 한부씩 나누어주는 것으로 타협이 이루어졌지만, 실제로는 이노 타다타카의 지도는 에도 막부만이 소유하였다. 지도 제작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도운 지방의 다이묘들은 여전히 일본의 정확한 모습이나 자신의 지역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잘 모를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언제던지 적이 될 수 있는 에도 막부가 자신의 번들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게 된 상황이 되었다. 결국,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었다.

본업은 스파이, 부업이 야구였던 선수

마츠오 바쇼나 이노 타다타카 등과 같은 사례가 야구계에서도 있었다. 1934년에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 등이 포함된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이 일본을 방문하였다. 1934년에 이은 2번째 미일 야구 대회가 열린 것이다. 일본은 1931년의 만주 침략과 1933년의 국제연맹의 탈퇴 등으로 소원해진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야구를 이용한 것이다. 반면에, 미국 역시 미일 야구 대회에 참가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미국과 일본 사이에는 태평양이라는 광대한 바다가 있어서 일본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던 미국은 미일 야구 대회를 합법적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야구복이 아닌 정장 차림으로 유명한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현 오클랜드)의 코니 맥 감독이 이끈 14명의 선수 중에는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은 물론이고, 조로한 파워히터 지미 폭스, 레프티 고메즈, 찰리 게링거, 에릭 맥네일 등 한시대를 풍미한 스타 플레이어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전 포수인 프랭키 헤이즈의 백업으로 모 버그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모 버그는 1921년에 브룩클린 로빈스(현 LA 다저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를 하였지만, 15년간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면서 통산 663경기에 출장해서 타율 0.243, 6홈런, 206타점 등을 기록하였다.

모 버그의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
Career
G AB R H 2B 3B HR RBI SO BB SB CS BA OBP SLG
1923-1939
663
1813
150
441
71
6
6
206
117
78
11
5
.243
.278
.299

야구선수로서 모 버그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성적을 남긴 무명이지만, 그의 진정한 재능은 야구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발휘되었다. 프린스턴대학 등을 졸업한 그는 10개국 이상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일본에 배로 오는 2주동안에 공부한 것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의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는 믿기 어려운 말도 전해지고 있다. 그가 정확하게 언제부터 정보 기관을 위해서 활동했는지는 불명확하지만, 최소한 1934년에 있었던 미일 야구 대회 때에도 그가 일본을 방문한 이유는 야구가 아닌 다른 것에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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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에 미일 야구 대회에 참가한 메이저리그 올스타팀과 일본의 전일본 선발 팀

일본팀과의 합동 청백전을 포함해서 치루어진 18경기에서 모 버그는 거의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게다가, 몇경기에는 야구장에조차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배트와 미트 대신에 사진기를 든 그는 야구장 근처의 군사 시설 등을 염탐하거나 토쿄 일대의 모습을 찍거나 하였다. 실제로, 그가 찍은 사진과 정보는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미국이 토쿄를 공습할 때에 유용한 자료로서 활용되었다고 한다.

일본 뿐만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유럽에서도 스파이로서 맹활약을 하였다는 말도 적지 않다. 그가 핵물리학자를 찾거나 독일의 군사시설을 폭파시키거나 하였다고 주장하는 연구가도 있다. 실제로 2008년 8월 14일에 CIA의 전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설립된 OSS에 소속된 공작원 약 2만 4천명의 명단이 공개되었는데, 아카데미상을 받은 존 포드 감독과 함께 그의 이름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정확하게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문득 야구선수와 스파이라는 이중생활을 한 모 버그의 삶에서 (연상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 '컨페션'이 생각난다. 조지 클루니의 감독 데뷔작으로, 조지 클루니와 샘 록웰, 줄리아 로버츠, 드류 배리모어 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척 배리스의 '위험한 마음의 고백 ; 공인되지 않은 자서전'을 영화화한 것이다. ABC 방송국의 연출가이자 제작자였던 척 배리스는 이 책을 통해서 비공식 CIA 요원으로서 35명을 죽였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모 버그와는 달리 그가 실제로 비공식 CIA 요원이었는지, 또한 그 주장이 사실인지를 증명하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그의 주장은 사실일까? 그런데, 이 영화의 핵심은 척 배리스의 말이 진실 여부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거대한 쇼일 수도 있고, 반대로 쇼라고 믿은 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따리 장사를 하는 자립형이나 생활 밀착형이라는 독특한 수식어를 달고 있는, 게다가 앞뒤가 잘 맞지 않는 간첩이 잡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소설이나 영화가 더 현실감 있게 느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출처 : Yagoora( http://yagoo.tistory.com/ )
:
미국의 개척사는 인디언의 멸망사와 같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수 있는 말이다.

오늘, 학교에서 좋은 이야기를 들었기에 여기에 적는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도시, 시애틀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추장 시애틀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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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의 대추장이 우리의 땅을 사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어떻게 당신들은 하늘과 땅을 사고 팔수 있는 것인가? 그 생각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수가 없다. 만약 우리가 공기의 상쾌함과 반짝이는 물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당신들은 그들을 어떻게 살수 있단 말인가?

지구상에 모든 것들은 우리들에게는 신성한 것들이다. 반짝이는 모든 소나무와 모래 해안, 깊은 숲속의 안개, 초원, 그리고 노래하는 모든 벌레들을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들의 추억과 경험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 된다.

우 리는 우리의 정맥을 타고 피가 흐르듯이, 나무를 타고 수액이 흐르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지구상의 일부분이며, 우리의 일부분인 것이다. 향기로운 꽃들은 우리의 자매들이다. 곰과 사슴, 큰 독수리들은 우리의 형제들인 것이다. 록키산맥과, 초원의 이슬, 조랑말의 체온,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의 가족인 것이다.

개울과 강을 흐르는 눈부신 물은 단순히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에 피와도 같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땅을 판다면, 당신은 이러한 신성한 것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각 호수의 깨끗한 물에서의 빛나는 빛들은 우리들의 삶에서 벌어질 일들과 기억들을 말해준다. 물의 속삭임은 우리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목소리이거늘.

강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그들은 우리의 갈증을 해소시켜준다. 그들은 우리의 배들을 운반시켜 주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물을 제공해 준다. 그래서 당신은 당신들의 형제들에게 주었던 친절을 강에게도 베풀어야만 한다.

만 약 우리가 우리의 땅을 판다면, 이 공기가 우리에게 소중하다는 것을, 공기가 우리의 삶을 도와 그것의 영혼을 나눠준다는 것을 기억해라. 바람은 우리의 조상들이 처음으로 내쉰 숨결이자, 마지막 한숨이다. 바람은 또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삶의 영혼을 알려준다. 스래서 만약 우리가 우리의 땅을 판다면, 당신은 초원들의 꽃들에 의해 향기로운 바람의 속삭임을 느낄수 있는 곳으로 간직하고, 신성히 여겨야만 한다.

당신은 당신의 아이들에게,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것을 가르칠 것인가? 지구가 우리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이 땅에 나쁜 일이 생기면, 이 땅의 자식들에게도 나쁜 일이 생긴다.

우 리는 이 땅이 사람에게 속해 있는게 아니라, 사람이 이 땅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것들이 우리 안에 있는 피처럼 다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 삶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안에 있을 뿐이다. 그가 그 그물안에서 무엇을 하든, 그 스스로에게 하는 짓일 뿐이다.

한가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의 신은 당신들의 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땅은 신에게 소중한 것이며, 이 땅을 상하게 하는 일은 그것의 창조주에게 모욕을 주는 것과 같다.

당 신의 운명은 우리에게 이해할수 없는 것이리라. 버팔로가 모두 도살당했을 때 무슨일이 벌어질 것인가? 야생마들이 길들여지면? 숲의 은밀한 곳이 많은 이들의 냄새로 가득차고, 푸르른 언덕의 광경이 전선으로 얼룩져버리면, 무슨일이 벌어질 것인가? 덤불 숲은 어디로 가지? 사라지는 것이다. 독수리들은? 역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빨리 달리는 조랑말에게 작별인사를 하고선 사냥을 할 것인가? 삶의 끝이자, 생존의 시작이다.

마지막 홍인들이 이 야생과 함께 사라졌고, 그의 기억은 오직 초원을 가로지르는 구름의 그림자가 되었으며, 이러한 해안과 숲들은 여전히 여기에 있을 꺼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들이 남긴 영혼이 있을 꺼라 생각하는가?

새 생명이 어머니의 심장고동소리를 사랑하듯, 우리도 이 땅을 사랑한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우리의 땅을 판다면, 우리가 그것을 사랑했던 것만큼 사랑해라. 우리가 그것에 신경을 썼던 만큼, 그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당신이 이 땅을 얻을때, 그 땅의 기억을 당신의 머릿속에 간직해야 한다. 모든 아이들을 위해 이 땅을 보호하고, 신이 우리를 사랑한 만큼 이 땅을 사랑하라.

우리가 이 대지의 일부분인만큼, 당신 또한 이 대지의 일부분이니. 이 대지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다. 또한 당신에게도 소중한 것이다.

한가지 우리가 알고 있는게 있다면, 오직 하나의 신만이 존재할뿐이며, 심지어 그가 홍인이든, 백인이든, 우리는 모두 행제라는 것이다.



P.S 이 글은 1854년 미 대통령 피어스에 의해 파견된 백인 대표들이 스쿼미쉬 인디언들에게 그들의 땅을 팔것을 제안한 것에 대한, 그들의 추장, 시애틀의 답변이다. 미 독립 200주년 기념 고문서 비밀 해제를 계기로 120년만에 세상의 빛을 본 이 편지로 인해, 이 지역의 이름이 시애틀이 되버렸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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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istory of settlement in America is the same as the history of the fall in Indian. This word is easy to find on the internet.

Today, I heard a good story in the school, and write here. This story is about the history of Seattle which is the city of America.


Chief Seattle's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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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esident in Washington sends word that he wishes to buy our land. But how can you buy or sell the sky? the land? The idea is strange to us. If we do not own the freshness of the air and the sparkle of the water, how can you buy them?

Every part of the earth is sacred to my people. Every shining pine needle, ever sandy shore, every mist in the dark woods, every meadow, every humming insect. All are holy in the memory and experience of my people.

We know the sap which courses through the trees as we know the blood that courses through our veins. We are part of the earth and it is part of us. The perfumed flowers are our sisters. The bear, the deer, the great eagle, these are our brothers. The rocky crests, the dew in the meadow, the body heat of the pony, and man all belong to the same family.

The shining water that moves in the streams and rivers is not just water, but the blood of our ancestors. If we sell you our land, you must remember that it is sacred, Each glossy reflection in the clear waters of the lakes tells of events and memories in the life of my people. The water's murmur is the voice of my father's father.

The rivers are our brothers. They quench our thirst. They carry our canoes and feed our children. So you must give the rivers the kindness that you would give any brother.

If we sell you our land, remember that the air is precious to us, that the air shares its spirit with all the life that it supports. The wind that gave our grandfather his first breath also received his last sigh. The wind also gives our children the spirit of life. So if we sell our land, you must keep it apart and sacred, as a place where man can go to taste the wind that is sweetened by the meadow flowers.

Will you teach your children what we have taught our children? That the earth is our mother? What befalls the earth befalls all the sons of the earth.

This we know : the earth does not belong to man, man belongs to the earth. All things are connected like the blood that unites us all. Man did not weave the web of life, he is merely a strand in it. Whatever he does to the web, he does to himself.

One thing we know : our God is also your God. The earth is precious to him and to harm the earth is to heap contempt on its creator.

Your destiny is a mystery to us. What will happen when the buffalo are all slaughtered? The wild horses tamed? What will happen when the secret corners of the forest are heavy with the scent of many men and the view of the ripe hills is blotted with talking wires? Where will the thicket be? Gone! Where will the eagle be? Gone! And what is to say goodbye to the swift pony and then hunt? The end of living and the beginning of survival.

When the last red man has vanished with this wilderness, and his memory is only the shadow of a cloud moving across the prairie, will these shores and forests still be here? Will there be any of the spirit of my people left?

We love this earth as a newborn loves its mother's heartbeat. So, if we sell you our land, love it as we have loved it. Care for it, as we have cared for it. Hold in your mind the memory of the land as it is when you receive it. Preserve the land for all children, and love it, as God loves us.

As we are part of the land, you too are part of the land. This earth is precious to us. It is also precious to you.

One thing we know - there is only one God. No man, be he Red man or White man, can be apart. We ARE all brothers after all.




P.S This letter was the answer of Seattle who was a chief of the Suquamish Indians, after White man's representatives who was dispatch by Pearson who was a president of America, suggested to them to sell their land. This story is about becoming Seattle which is the name of this area, by this letter which was opened to the public 120 years caused by revocation of old secret documents in the 200th of remembrance of America indepen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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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의 각 성들

History 2006. 2. 27. 17:06 |
출처 : 네이버 지식iN 오픈백과 中 piry777 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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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랑드리성 정원(프랑스 루아르현)
1906년에 성을 인수한 조아킴 카르발로 박사가
노벨상 수상자인 샤를르 리슈와 함께 정원을 가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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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부아즈성과 루아르강
이 성에는 아픈 역사가 간직되어 있는데, 어린 프랑수아 2세가 왕위에 등극하자 당시 구교도(카톨릭)였던 기즈 공이 실권을 쥐게 되었고이에 반발한 신교도들이 기즈 공을 암살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다가 발각이 되어 이 성에서 약 1,500명이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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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부아즈성
앙부아즈 성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최후를 맞은 곳이기도 한데 그가 사용했던 방은 박물관으로 공개되고 있으며, 그의 유해는 성 안에 있는 교회에 안치되어 있다. 샤를 13세, 루이 12세, 프랑수아 1세에 의해 15세기와 16세기에 걸쳐 건축된 앙부아즈 성은 최고의 왕궁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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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궁전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건축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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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 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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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베데레궁전
오스트리아 빈. 바로크 건축가 힐데브란트에 의해 건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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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렌헤임성
영국 잉글랜드 옥스퍼드셔주의 주도인 옥스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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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 대궁전
러시아의 모스크바. 19세기 초기의 건축으로
러시아 정부의 핵심이며 독특한 역사적, 건축적 보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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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농소성
프랑스 엥드르 에 루아르
이 성은 귀족 부인들에 의해 르네상스시대부터 조금씩 지어진 건물이다. 셰르강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으며 아치형의 다리위에 60m의 회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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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보르성관
루아르에 있는 성 중에 가장 크고 화려한 성이다. 1519년 프랑수아 1세에 의해 원래 사냥터에 있던 저택을 화려한 성으로 개조한 것이다.
성의 내부에는 440개의 방과 365개의 벽난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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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리도성
이 성은 프랑수아 1세 때의 타락한 재무관의 부인인 필리파레바이에 의해 16세기 초에 건축된 루아르의 성 중 하나이다. 전체적으로는 고딕양식을 취하고 있지만 비교적 단순한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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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슈반슈타인성
독일 바이에른주 퓌센 동쪽에 바이에른왕 루트비히 2세가 건설한 성채궁전으로 독특하고도 낭만적인 느낌을 주는 성으로 이 성을 본떠 만든 것이 바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유명한 테마파크에 있는 디즈니랜드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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쇤브룬궁전의 전경
오스트리아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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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킹엄궁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시.
왕정의 사무실과 주거지로 쓰이고 있으며 사진은 버킹엄궁전에서 군중을 향한 발코니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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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젠버그궁전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
덴마크의 로젠버그왕이 세운 별장이며 현재는 왕실의 보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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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 그라노비타야궁전
러시아 모스크바. 1487~1491년에 걸쳐 이탈리아 마르코라포와 피에트르 솔라리가 지었으며, 15~16세기에는 외국사신을 접견하는 곳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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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왼스궁전
덴마크 코펜하겐. 덴마크 왕비의 거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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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릭스베르궁전
덴마크 셸란섬
18세기에 프레데릭 4세에 의해 건조된 이탈리아 양식의 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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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시궁전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포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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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더호프궁전
독일 바이에른주의 린더호프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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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펜부르크궁
독일 뮌헨시에 있는 님펜부르크 궁전과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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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머성
프랑스 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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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랑드리성
프랑스 루아르현. 르네상스양식의 건물이며 1532년에 세워졌다.


출처 : 네이버 지식iN 오픈백과 中 piry777 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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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 장녹수

History 2006. 1. 18. 0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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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녹수

연산군의 여자관계를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여인이 장녹수이다.
연산이 분노했던 그대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은 임금의 황음 내지는 못된 첩이 한 인간과 나라를 망친다는 식의 역사이해를 가져 왔다.
바로 그런 역사관에 의해 연산시대의 악녀로 자리매김된 여인이 장녹수이다.

장녹수는 연산군 8년 3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연산이 승지에게 그녀의 부친 장한필의 내력을 조사시켰다는 기록인데, 이 해부터 장녹수에게 빠졌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보아 대략 이 때쯤 연산과 장녹수가 만났던 것같다.
장녹수의 아버지 장한필은 문과에 급제하고 성종 19년에 충청도 문의현령까지 지냈다.

그러나 더 이상 크게 출세하지는 못한 것 같다.
어머니는 장한필의 첩이었고 신분도 천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조선시대에는 부모 중 한 쪽이 천인이면 자녀는 자동으로 천인이 되었으며, 그 자녀의 소유권은 모계를 따라 가도록 되어 있었다.
장녹수가 제안대군의 종과 결혼하고, 제안대군의 여종이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모친도 제안대군의 종이 아니었나 싶다

장녹수의 젊은 시절은 불행했다.
가난하고 신분도 천한 여인이라 몸을 팔아서 생활했고 결혼도 여러 번 했다.
그러다가 제안대군의 집 종과 결혼했다.
아들 하나까지 낳았는데, 이 가정도 힘들었던지 다시 생활전선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닥에서 몸을 파는 수준에서 벗어나 노래와 춤을 배워 정식으로 기녀생활을 했다.

희대의 바람둥이를 매혹시킨 장녹수의 매력은 어떤 것이었을까?
의외로 그녀는 탁월한 미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실록에서는 그녀가 그냥 중간 수준의 얼굴이라고 표현했다.나이도 연산보다 두세 살 이상 많았다.
그러나 30대에도 16세의 앳된 소녀처럼 보일 만큼 동안이었던데다 영리해서 남자의 뜻을 잘 맞추고, 아양 떨고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은 견줄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연산이 남다르게 총애한 여성은 장녹수 외에도 많았다.
그러나 장녹수는 그들 중 누구도 누리지 못한 특별한 역할을 했다.
연산은 장녹수를 거의 아내처럼 대우했다.
연산의 왕비 신씨는 신승(숭)선의 셋째 딸이었다. 연산과 신비의 사이는 좋았다.
연산은 신비를 현모양처요 훌륭한 국모로 인정하고 존중했다.

그러나 그것은 국왕과 왕비의 사이였다.
연산이 국왕이 아닌 세속적 인간으로 돌아올 때는 장녹수가 그의 아내가 되어 주었다.
때로 장녹수는 연산을 어린아이같이 조롱하고 연산을 학대하며 욕을 하기도 했다.
이런 일을 기록한 사람은 혀를 찼지만, 연산은 인간 본연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고, 그런 세계를 맛보고 싶었던 것같다.

그러나 섣불리 연산에게 그런 공간을 연출했다가는 당장 국왕 능멸죄에 걸렸을 것이다.
그 역을 감당하기에는 아주 특별한 매력과 재능이 필요했다.
아마도 장녹수는 오랜 창녀생활을 통해 남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파악하고 충족시켜 주는 재능을 터득했던 것같다.
연산이 아무리 화가 났다가도 장녹수만 보면 반드시 기뻐하며 웃었다고 하니 대단하지 가 않는가!

사적인 청탁과 인정을 배제하기는 불가능한 사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녹수가 인사나 이권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개입한 것 같지는 않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위에서 하던 부정들은 과거부터 종친과 훈구세력들이 늘 해오던 일들이다.
수령이나 하급관직은 몰라도 녹수의 청탁으로 고위직에 올랐다는 사람도 다 종친이나 관료들이었다.

그녀의 친척 중에서 제일 출세한 사람이라면 형부 김효손인데, 연산군 10년 이전에는 겨우 7품 무관직인 사정(司正)을 받았을 뿐이다.

6품과 7품은 질적 차이가 있어서 7품 이하는 정치적 비중이 거의 없는 단순 행정 또는 실무직에 해당하며, 서리 출신들도 여기까지는 많이 진출했다.

그러나 연산군 10년에서 12년 사이에 김효손은 벼락승진을 해서 정3품 당상관까지 올라갔다.
아마도 이 조치에 대해 많은 관료들이 상당히 분노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녹수의 일가로서 출세한 사람은 그 하나뿐이었다는 점은 고려해 줄 만하다.
녹수의 집을 건축할 때 대간을 보내 감독을 시킨 것이나 내시와 승지 등에게 그녀의 가마를 뒤따르게 한 것 등도 그녀의 청탁이 아니라 연산이 항상 궁리했던 '관료 길들이기'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관료들은 종친과 고급관료가 천인 출신의 계집에게 굽실거리고, 사족의 집과 땅이 그녀의 손아귀로 들어가며, 그녀의 종들이 자신들의 종을 우습게 보고, 상권, 노비, 토지 등의 이권다툼에서 자신들을 이기고, 자신들의 이권을 앞서서 채가는 현상을 참을 수 없었다.

이것은 사회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행위였고, 왕이나 세상 사람들이 기억해서는 안 되는 전례였다.

그녀의 최후는 비참하였다
중종반정이 일어났을 때 녹수와 전비 등은 당일로 군기시(지금의 서울시청과 서울신문사 사이)앞에 끌려가 처형당했다.
많은 후궁들 중에서 녹수와 전비가 비난과 처형의 대상이 된 것은 그녀들의 재산이 많았던 탓도 있지만(그 중 상당수는 연산이 공신, 관료들로부터 빼앗은 것들이다), 그녀들의 출신이 미약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들의 진정한 죄는 자신들의 주제로서는 참여해서는 안 되는 특권에 참여한 죄였을 것이다.
장녹수는 미인도 아니면서,또는 미천한 출생인 집안이였기에 남달리 신분에 대한 애착이 강했을 것이다.
또한 연산군은 어릴 때 자신의 어머니가 비참하게 죽은 것과 할머니를 비롯한 주위에 대한 냉대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이들이 서로서로간에 깊은 관계를 맺을수 있었던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연산군은 희대의 폭군이었다.
하지만 녹수는 희대의 악녀도 아니었고,가슴 깊이 원한 맺을 정도로 사무친 그 무엇도 없다.
다만 천박한 그 자체가 오히려 연산이 바라보는 미였는지도 모른다.


그 시대는 그 시대 나름대로 특징이 있듯이 연산의 시대의 인물로서 손색함이 없었던 여인이 바로 장녹수가 아닌가 추측한다.



출처 : ★MASUNG★악마의유혹★마성의악녀★( http://blog.naver.com/neco_h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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