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국'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7.05 [Book]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조진국 지음
대학시절, 비오는 캠퍼스를 바라보던 내 모습은 집을 찾아서 맨 몸뚱어리로 콘크리트 바닥을 쓸며 다니는 민달팽이와 닮았다. 그땐 내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늘 어딘가로 떠났다. 그 길위에 내가 찾는 것은 없지만, 그 길을 걸으며 나를 찾았던 건 아닐까. 내가 무엇을 가장 그리워 하고, 가장 원하는지...
그러면서 청춘의 시간은 흘러갔다. 지나고 나면 그 시절이 좋았어. 라고 감상적으로 말할수 있지만, 막상 그때는 어느 때보다 힘들고 거친 시기였다
고민의 주제와 소재가 다른 것일뿐, 젊음의 무게가 가벼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속한 그 시절이 가장 아픈 법이다.

- 젊음은 '가벼운' 것이 아니라 '아픈' 것이다. 中 -

오늘 녹차의 맛은 "쓰다". 특유의 담백한 맛도, 고소한 맛도 다 사라지고 씁쓸한 맛만 진하게 입 안에서 감돈다. 여러 가지 소용없는 생각을 하느라 티백을 너무 오래 담갔기 때문이다. 뭐든 너무 오래되면 무미해지거나 씁쓸해지는 것일까. 하지만 지금처럼 그것도 그런대로 적응되면 나쁘지는 않다.
너와 헤어지고 오랫동안 녹차를 입에 대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녹차만 보면 네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녹차를 입에 대지는 않았지만 마시고 싶다는 생각은 늘 쏟아질 것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누군가를 잊으려고 연락 한번 안 하고 살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잊히지지는 않는 법이다.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멈추어야 한다. 아니면 지금의 나처럼 결국 소용없이 더 진해지는 법이다.

- 숫자는 달콤한 사랑의 언어다. 中 -

네가 더 사랑해서 그런거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덜 사랑하는 사람이 무심코 흘려버리는 것까지 뒤에서 다 주워서 안고 가야 하기 때문에 무겁고 힘든 거야. 지치지 말고 힘내.

- 너의 눈물까지 감싸안는 사람이고 싶다. 中 -

뒤에서 안는다는 건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포옹보다 더 깊다. 눈높이에서 마주 보고 주고받는 안정감이 아니라, 날 완전히 상대에게 내맡기고 놓아버렸을 때의 평안함이다. 이제부터 널 안겠다는 예고의 눈빛이나 감정의 준비도 없이 갑작스러운 체온에서 불안감이 아닌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건, 상대에게 완전하게 기댈 수 있기에 가능하다. 누군가에게 뒷모습을 허락한다는 것은 전부를 주는 것이다.

강한 사람은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머릿속에 저장한다.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다. 수첩에 기록하는 것처럼 기억을 정보로 분류해서 머릿속에 적어둔다. 하지만 약한 사람의 기억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속에 저장돼있다. 머릿속에 적는게 아니라 가슴에 새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파오는 것이다.

- 뒷모습을 허락하는 것은 전부를 주는 것이다. 中 -

세상엔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과 햇빛이 나면 생각나는 사람으로 나뉜다.

세상엔 사랑을 잊는 시간이 긴 사람과 사랑을 찾는 시간이 긴 사람으로 나뉜다.

받을수 없는 슬픔보다 줄 수 없는 슬픔이 더 크다는 것을. 평생을 엄마에게 받아왔고,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엄마는 나에게 따뜻한 체온을 남겨주셨지만 나는 이제 되돌려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특별한게 아니라 가장 평범한 걸 해줄 수 없다는 것을. 평범한 걸 해줄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손을 잡고 봄꽃이 피는 고궁에 데려가지 못하고, 함께 주말드라마를 보며 사과를 깎아주지 못하고, 월급타서 새 옷 한벌 사주지 못하고, 좋은 남자를 데려와 소개시킬 수 없다는 걸 느낄 때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 사랑에 빠지면 아이도 어른이 된다. 中 -

 그날 밤, 후배를 버스에 태워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누우려는데 문자가 왔다. 후배였다.
'선배, 절 위해서 못먹는 스파게티 같이 먹어준 거 정말 고마웠어요. 스파게티를 함께 먹는 동안 선배가 절 좋아하는게 아닐까 착각했었어요.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소화가 다 되어가니까 이제 알 것 같아요. 그건 내 착각이라는 것을. 하지만 완전히 소화가 되기 전에 이 말만은 꼭 하고 싶어요. 선배, 사랑해요...'

문자를 읽고,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후배가 왜 그렇게 웃지도 않고 스파게티에만 열중하고 있었는지. 나와는 눈도 맞추지 않고 왜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지. 그때 후배는 맛있는 음식에서도 슬픈 맛이 날 수 있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내게 마음이 없는 사람을 앞에 두거나 마음이 떠난 사람을 생각하며 음식을 먹을 땐 달콤하고 맵고 짠 모든 것이 슬픈 맛으로 변한다는 걸, 나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 더 사랑해서 더 외로운 사랑이 있다. 中 -

그래. 세상에 사랑에 쿨한 사람은 없다. 쿨한 척할 뿐이다. 뜨거웠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쿨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가장 쿨한 것이다. 그게 사랑이다. 마음이 데여도 괜찮다. 너의 마음이 어떻게 변했든, 난 너를 뜨겁게 사랑했고 그랬으니 뜨겁게 추억할 것이다. 그건 너하고 상관없는 나의 특권이다. 이상하게 울지 않았는데도 불이 훑고 지난 자리처럼 마음속이 뚫리고 위로가 되었다. 까맣게 타버린 그 자리엔 화전처럼 슬픔을 거름으로 언젠가 파란 싹이 고개를 내밀 것만 같았다.

- 울어도 변하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쓸쓸함' 이다. 中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