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지피정보공화국 知彼知己 | 작성자 : 얼음거인 님

2005. 9. 6. 초판


현재 GP32의 후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멋대로 지껄여봅니다.


GP32, 죽다.

2004년 하반기, GP32는 WBW의 출시를 마지막으로 게임기로써의 수명을 다했습니다. 물 건너의 S모사처럼 깔끔하게 망한 것도 아니고 발매 직후부터 근 3년동안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제대로 된 타이틀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N모사의 G모 게임기에 비해 지극히 높은 시장진입가격은 초도 물량의 소화 불량을 일으켰습니다. 보통은 당장에 망했어야 정상입니다만, 어째서인지 숨이 붙어있다 하기도 뭐하고 끊어졌다 하기도 뭐한 그런 상태가 주욱 지속되었습니다. 그건 다 보험 덕택이었죠. (주1) 게이머들은 GP32가 게임기에서 PMP 에뮬레이터 콘솔로 탈피하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았고, SDK 공개가 가져온 - 그 겉으로 보이는 순수한 의도와는 정반대로 - 개인 경제에 미치는 간사한 이익에 맛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용상의 난점과 신규 컨텐츠의 부재로 인해 GP32 사용자의 수명은 대충 봐도 평균 6개월 정도였고, 그 결과는 중고 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적절한 균형이었습니다. GP32 사망보고서, 끝.

죽었는데, 그래서?

너무 너무 흔해빠져서 오히려 그 진부함으로 진리를 입증하는 속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니까, 게임기는 죽으면 무엇을 남길까요? (주2) 태초에 아타리가 있었다고 하면, 아타리는 패밀리와 세가 마크3를 낳았고, 패밀리는 게임보이와 슈퍼 패미콤을 낳고, 슈퍼 패미콤은 게임보이 어드밴스를 낳고, 세가 마크3는 메가드라이브를 낳고, 메가드라이브는 세가 새턴을 낳고, 버추어 파이터는 플레이스테이션을 낳고,(주3) 플레이스테이션은 닌텐도64를 낳고, 닌텐도64는 세가 새턴을 강간해서 드림캐스트를 낳고, (주절주절) 게임보이 어드밴스는 PDA와 간통해서 닌텐도DS를 낳으니......여기까지.

GP32는 조금 복잡합니다. 계보로 따지고 들자면야 게임보이 어드밴스의 물건너 사촌인데, 사망보고서에서 전술했듯이 시작은 게임기로써 위력을 과시했지만, 사망 시점에는 PMP 에뮬레이터 콘솔이었습니다. 게임기였는데 게임기로 죽을 수가 없었다는 말씀이죠. 상속권 분쟁의 복선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 곧 죽더라도 아버지의 못 다한 한을 풀어볼까? 굶어죽는 것보다야 개처럼 벌더라도 먹고 사는게 낫지. 그러니 이건 내가 가져가마. 그러니 이건 내가 가져가마.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오고, GP32는 꿈의 세계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곤 굶어죽었죠. 교훈, 교훈. GP2X가 가져간 것은 교훈. XGP가 가져간 것은 꿈. 그 결과는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GP2X - PMP 에뮬레이터 콘솔.

교훈 - 결국 보험으로 먹고 살게 되었다 - 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GP32 사망 시점의 포지션을 그대로 계승합니다. 일단 스펙이나 디자인이 거의 완벽한 GP32의 마이너 업그레이드 버전입니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고, 저장 장치쪽이 좀 빈약한 것이 단점이지만 목적이 완전 PMP는 아닌데다가 기존 PMP 시장과는 교집합이 있을 뿐이라 그다지 영향은 크지 않을 듯 싶습니다. GP32와 똑같이 개발 환경을 개방하지만 리눅스를 OS로 채택해서 좀 더 용이한 개발이 가능하도록 한 점은 GP2X의 포인트입니다. 이를 위해 유명한 GP32 개발자들과 미리 컨택하고 상의한 것으로 보이는군요. (GP32x.com의 게시판을 보세요. 주4) GP32는 SDK를 개방한 결과 에뮬레이터 머신이 되었고, GP2X는 그걸 아예 주력 마케팅 무기로 사용할 작정인 듯 합니다. 적당히 싼 가격에, 무료로 공급되는 평생해도 다 못 해볼 추억의 게임들. 이 정도면 타임킬링용 포터블 기기로는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왠지 GP32의 냄새가 납니다.

퀴퀴한 뒷골목의 냄새입니다.

개발 라이센스 개방를 도입한 것은 좋게 말하면 GP2X 홈페이지에 소개된 대로겠지만, GP32의 전례로 봤을때 실질적으로는 '자작 프로그래머들의 자원봉사'를 통해 부족한 컨텐츠를 보충하겠다'는 취지일겁니다. GP32 시절에는 언급조차 꺼리던 에뮬레이터를 마케팅 전면에 내세운 것은 당장은 먹혀들겠지만, 장기적으로 내다 본다면 상당한 부담이 되겠죠.(주5) 하지만, 이러한 예측 가능한 비난을 아주 간단하게 공허한 외침으로 만들어 버릴수 있는 지독하게도 현실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1. 현재 GP32 유저들은 GP32를 게임기로 보고 있지 않다.
        2. 한국에서는 공짜가 최고다. MP3 한 번도 안 받아본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3. 돈은 아껴써야지.

GP32 사용자의 수명은 대략 6개월 정도, GP32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지만 만져본 사람은 수두룩한 이유입니다. 살짝 뒤집어보면 GP32를 게임기로 구매한 초기 사용자층은 거의 다 빠져 나갔다는 것이지요. 현재 GP32를 보유하고 있는 사용자들의 대부분은 '저가형 PMP 에뮬레이터 콘솔'로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추정 가능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똑같은 포지션에 위치하면서 가격 부담이 덜하고, 스펙은 더 강력한 GP2X가 GP32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기존 유저들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와버립니다. 더더군다나 게임기 보다는 PMP이므로 플랫폼 홀더가 신규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투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6) 동영상등의 멀티미디어 컨텐츠는 사용자가 자기 조달해야하고, 굵직굵직한 GP32 개발자들이 속속 GP2X로 개발을 선언하고 있으니 어플리케이션 -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에뮬레이터 - 확충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쌓여갈 겁니다. 펌웨어 정도만 꾸준히 유지보수 해주면서 플랫폼만 열심히 팔면 됩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도 그다지 불만은 없는 것이, 컨텐츠의 자기 조달은 저작권 개념이 희박한 국내에서는 거의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DVD를 산 다음 몇 시간씩 땀 뻘뻘 흘려가면서 인코딩 해가지고 보시는 분 계신가요?) 개발자들은 원래부터 심심풀이 삼아, 아니면 공부 삼아 만드는 사람들이 대다수. GP32를 거쳐 내려온 윈윈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기계만 사라. 컨텐츠는 셀프. 영원히 계속되는 어둠의 마이너 인생?

GP32의 포지션은 마이너였고, GP2X가 GP32의 시스템을 물려받는다면 마이너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용자에게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고마운 시스템일지는 몰라도, 게임기의 상도에서 어긋난 시스템이라는 것은 GP2X에게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입니다. 게임기이기 보다는 PMP쪽에 더 가까우니 컨텐츠 보다는 기계를 파는 장사일테고, 에뮬레이터는 PMP의 기능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에 그다지 상도에서 어긋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반응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설사 회사 차원에서 공식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에뮬레이터 기능을 특장점으로 삼으면서 상용 게임 발매를 준비하고 있는 현 상태는 어딘가 모르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합니다.

마이너를 벗어나기 어렵다면 판매량도 마이너를 벗어나기 어려우며, GP2X의 승부처는 여기에 있습니다. PMP 에뮬레이터 콘솔의 숙명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타 PMP나 PDA처럼 제품 라인업을 다양화해서 시장 참여 범위를 넓히는 수 밖에는 없어 보입니다. 자체 공급하게되는 컨텐츠가 변수입니다만. GP32 같이 중고 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싶지 않다면 선택의 여지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GP32 사용자들의 이율배반적인 희망에서 말미암은 모호성이 GP2X가 비윤리적 시각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는 점 또한 동선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지요.

유산을 상속 받으려면 부채 또한 같이 상속 받아야 합니다.

두서없이 주절거렸지만 어찌됬건 GP2X는 GP32 사용자 군의 대다수를 흡수할 것으로 보입니다. 저작권에 대해서 좀 더 노골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GP2X의 성공여부는 XGP의 성공여부와 함께 한국 계임계의 척도가 될 듯 합니다. 이 땅에서는 이미 게임에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면서 즐기는 '게이머'가 거의 전멸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GP2X 같은 컨셉의 기기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주7)



XGP - 꿈은 창대하리라.

국산 게임기를 만드려는 시도는 여럿 있어왔습니다. 80년대 후반부터 세가 게임기를 통해 꾸준히 시장에 참여해오던 삼성전자의 엑스티바라던지, LG의 3DO 컨소시엄 참여 등등. 결과의 공통점은? 완전한 실패. GP32는 그 연장선상에 있었으며, 실패라는 필연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뒷수습 방식은 간접 참여로 방향을 선회한 선배들과는 전혀 달라 보입니다.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걸까요? 아니면 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일까요?  XGP는 휴대용 게임기입니다. 나올 확률이 지극히 희박했던 컨셉이었죠. (주8) 스펙도 극적입니다. 3D 가속기를 탑재한 위에 PMP, 지상파 DMB, 와이파이 등등, 거의 올인원 급의 위용을 자랑합니다. 전화만 안된다 뿐이죠. PSP 밸류팩과 비슷한 수준에서 맞춘다고 하는 가격도 들어간 기능에 비하면 그다지 비싼 편은 아닌 걸로 보입니다. 휴대하면서 즐길 수 있는 거의 모든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능의 조합. 이런 경우를 두고 사람들이 늘상 하는 말이 하나 있죠. 맛있는 재료만 모아서 요리를 만든다고 해서 그 요리가 꼭 맛있는 건 아니다. 요리를 만드는 건 요리사니까.

XGP의 전선은 너무나도 넓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기능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장점을 인정받으려면, 모든 기능들의 완성도가 각각 다른 전문 휴대용 기기들과 비교해서 본전치기는 해야합니다. 있는 둥 마는 둥 해서 단가만 올려놓으면 사용자들은 절대로 거들떠 보지도 않겠지요. 다기능 기기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비교 대상이 너무 많다는 건 싸워야 하는 적들이 부지기수라는 이야기고, 전쟁이나 IT업계의 경쟁이나 다를 게 없는 건 돈과 머릿수의 싸움이라는 사실이며, 게임파크는 돈과 머릿수에서 여유가 별로 없다는 점에 주목합시다. 전선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게임. 두말할 것도 없이 황제 소니의 PSP, 역전의 노장 닌텐도의 NDS와 경쟁을 벌여야 합니다. 다크호스인 GPANG/GXG도 있지요. PMP.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옆집에서 GP2X를 만들고 있습니다. 지상파 DMB. 삼성, LG에서는 이미 대응 휴대폰을 만들어놓고 본방만 죽어라 대기중. 와이파이. KT가 AP를 더 깔아주길 바라느니 차라리 와이브로를 기다리겠습니다. 여러가지가 복합된 전선으로 들어가볼까요. 게임 + PMP. PSP가 있죠. 레인콤의 신형기도 있습니다. NDS는 옵션이고 기능도 미약한 편이니 제외하죠. PMP + 지상파 DMB. 지상파 DMB는 수신료가 무료입니다. (주9) 따라서 앞으로 나오는 대부분의 PMP들은 지상파 DMB 칩을 달고 나올 확률이 99.9%입니다. 미디어 재생기인데 당연히 TV도 볼 수 있어야죠. 헉헉. 슬슬 지쳐오니 이 정도에서 접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전도 유망한 분야에는 거의 발을 들여놓지 않는 곳이 없지요. 더군다나 만만한 상대는 없.습.니.다. 휴대용 기기는 다기능일 수록 좋다고들 합니다만, 이렇게 싸울 일이 많으면 어떨까요? 커버되는 범위는 넓지만, 수요층의 범위는 그와는 정반대로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게임기랑 MP3P는 있으니 DMB 폰을 하나 장만해볼까. PSP로도 동영상 충분히 볼 수 있는데, TV는 집에서 보지....자본주의의 동물인 인간은 본능적으로 중복 투자를 피하기 마련입니다. 한도 끝도 없는 전투.

사실 단일 플랫폼에 할당되는 전선이  점점 넓어지는 게 추세이기는 합니다. CPU가 점점 고성능화 되어가면서 휴대용 기기들의 통폐합이 가속되었고, 게임기도 예외일 수는 없었습니다.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GP32였고, 조디악과 기즈몬도등이 대세를 만들었으며, PSP가 메이저 시장에 안착시켰지요. 레인콤을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 뛰어들게 만들고, 닌텐도로 하여금 플레이얀을 만들게 했던 추세. GP32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PSP가 20만대를 팔아치워도 게임은 거의 안 팔리는 이유. 하지만 PSP는 여전히 게임기로 포지셔닝 됩니다. 그런데 XGP는 조금 위험합니다.

지금까지의 XGP는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게임기의 정체성은 '나는 게임기요.'라는 자기 선언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라는 명제는 이미 GP32가 온몸으로 증명한 바 있습니다. 또 그 것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도. GP2X에 비해서 XGP가 어려운 점은, 전선이 지나치게 넓은 것 외에도 한 번 실패했던 목표에 다시 재도전해야하는 4년짜리 숙제가 밀려있다는 점입니다. (주10) 지금까지의 두 달간 XGP가 어필했던 것은 가능성, 퀘이크3 엔진이 돌아가는 것도 가능성이고, 와이파이가 장착되는 것도 가능성이고, 액정이 돌아가는 것도 가능성, 기타등등, 그 가능성의 구현화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아무 것도 보여준 바가 없습니다. 이는 거대한 불확실성을 사용자에게 안겨줍니다. GP32의 가능성에 열광했던 사람들이 종국에는 왜 다들 실망하면서 떠나갔는지, 그리고 냉소주의자가 되어버렸는지 되짚어 본다면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습니다. XGP가 붕 떠버린채 호사가들의 저녁 안주거리가 되고 있는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녀석은 아직 꿈 속에 있기 때문이죠. 관상용으로 쓰기에는 상당히 좋지만 손에 쥐고 흔들기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렇게 드넓던 XGP의 전선은 이 시점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됩니다.

모든 곳에서 충돌이 일어납니다.

모든 불확실성과 냉소와 GP32가 남겨둔 불합리와 맞서 싸워야 합니다. GP32의 가능성에 반했다가 그 불확실성에 지친 게이머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스탠드 얼론 게임은 죽었다 깨어나도 성공할 수 없다고 하는 냉소주의자 게이머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댓가를 지불할 줄 모르는 자본주의의 미숙아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꿈을 잃어버린 개발자들에게 열정을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참신함이나 완성도가 아닌 들인 돈의 양이 성공의 척도가 되는 블록 버스터 위주의 게임 시장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현실에 구현되어야 합니다. 게임 '산업'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게임 '문화'의 측면에서조차 XGP에게는 쉴 자리라곤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이를 게임파크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건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바로 답이 나올 듯 합니다.(주11)



결어 - 그래서, 당췌 뭘 어쩌라고?

나중에 출시되고 나서 발목 잡히느니 미리 패는 편이 맷집 기르기에 좋을거라는 독선적 판단하에 약점으로 지적될 만한 것 중 가장 심각한 문제를 하나씩 끄집어 내서 두들겨 패봤습니다. 횡설수설을 정리해봅니다.

GP2X의 강점은 현실 친화력이고, 약점은 윤리성 결여입니다. 그리고 그 강점은 약점을 상당부분 커버하고도 남을겁니다. 하지만 장기전으로 가면 갈 수록 약점은 곪아갈 것이 분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타로 치고 빠지는 단기전으로 가야합니다. 호환 모델을 계속 개발해서 시장 참여도를 높여야 하겠습니다. 전용 게임을 컨텐츠로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에뮬레이터의 지원 범위가 16bit 게임기를 완벽하게 커버하게 된다면 소규모의 개발팀으로 그 퀄리티를 따라잡기에는 아마 무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수지타산도 별로 맞지 않지요. 지금 게임파크 홀딩스가 관련 컨텐츠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마 GP2X가 충분히 시장에 공급되고 난 뒤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GP32 사용자 층과 개발자들 대다수가 GP2X를 지지하고 있는 것은 커다란 힘입니다. 좀 앞 뒤가 안 맞는 느낌이 들긴 합니다만.

XGP의 강점은 가능성이고, 약점은 가능성의 구현입니다. 전술했다시피 XGP의 전선은 게임 시장 및 게임 문화계 전반에 걸쳐 광역으로 구성되어있는 관계로, 게임파크 혼자서 다 감당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무리입니다. 한시 바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군을 확보해서 연합 전선을 구축해야합니다. 불확실성의 해소 또한 함께 보조를 맞춰서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는 사용자층의 결집을 위해 XGP의 게임기 포지션을 확립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 XGP는 발매 당일까지도 불확실성과 지루한 싸움을 벌여야 할 것입니다. GP32와는 아픈 기억만 남겨두고 깨끗이 정리하는 편이 XGP의 미래를 위해서 타당한 행동입니다. GP32의 최후를 기억하라.

XGP, GP2X, 그리고 GP32를 둘러싼 관계. GP32를 만든 게임파크는 그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 XGP를 만듭니다. GP32의 활로를 찾아다니던 게임파크 홀딩스는 GP2X로 그 활로를 다시 더듬어 보려 하고 있습니다.(주12)얼핏 보면 그냥 지 밥그릇을 찾아 찢어진 것처럼 보이는 이 구도에 한국에서 게이머로 살아온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한국 게임 시장의 소비자의 문제점과 아킬레스 건을 전례없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적시하고 있음이고, 또한 두 플랫폼의 향후 행보가 앞으로 그 타개책에 대한 밑그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자그마한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들 일어나세요. 이제는 좀 놀아줍시다.



사족 : Copyright도 제대로 안 돌아가는 나라에서 Copyleft가 제대로 돌아갈까요?

주1 : 그러니 여러분, 보험은 단단히 들어둡시다.

주2 : GP32가 게임기였냐는 질문은 패스.

주3 : 시대의 아이러니. 세가 게임팬에게는 사상 최대의 비극.

주4 : 게임파크와 게임파크 홀딩스가 아직 같이 놀던 시절, 마케팅 및 해외 시장 관리는 게임파크 홀딩스의 담당이었습니다.

주5 : '우리는 게임 만들 돈도 없거니와 끌어올 돈은 더더욱 없는데, 게임 기능은 넣고 싶으니 무임승차하겠습니다.' 게이머 윤리에 비추어 보자면 용납이 안됩니다.

주6 : 게임파크 홀딩스가 GP2X의 컨셉을 게임기가 아닌 PMP 에뮬레이터 머신으로 잡고 있다는 건 다른 IT 관련 웹진을 조금만 들춰 봐도 간단히 알 수 있습니다. PMP와 에뮬레이터라는 단어 두 개를 나란히 놓으면 묘하게 잘 어울리지요.

주7 : 카트나 스킬이나 코스튬에 캐쉬 발라대는 걸 '게임 자체를 구입해서 즐기는 행위'라고 보기에는 어렵겠죠. 요즘 아이템으로 수익창출하는 온라인 게임을 보면 돈 없는 사람은 게임에서도 평생 밑바닥을 뒹굴라는 취지로 보입니다. 돈 없는 사람은 게임도 하지 말라는 취지보다는 낫다구요? 천만에, 들러리 서느니 안 하는 편이 낫습니다. 좀 더 덧붙이자면, 이 나라는 PSP가 20만대 팔려도 게임 타이틀은 평균 2천장 정도 밖에 아니 팔리는 나라입니다. PS2나 XBOX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주8 : GP32의 끝자락 시절, 현실적인 사용자들은 대부분 후속기가 나온다면 저가형 PMP로 나오지 않을까 하고 점을 쳤습니다. 이제 멍석 깔고 나가 앉으셔도 될 듯 합니다.

주9 : 위성파 DMB는 주로 케이블 방송국-상업성을 추구하고. 지상파 DMB는 공중파 방송국-공익성을 추구합니다.

주10 : 그럼 XGP에 비해서 GP2X가 어려운 점은? 도덕적, 윤리적 타당성.

주11 : 비단 XGP 뿐만 아니라 여타 게임 콘솔들도 같은 문제점에 노출되어있지요. 상식이 비주류가 되었습니다.

주12 : GP32의 권리는 게임파크가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홀딩스가 GP2X를 GP32의 후속기 포지션에 가져다 놓은 것은 게임파크가 보기에는 복장이 터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용자가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거든.


XGP 홈페이지 : http://www.gamepark.co.kr/
GP2X 홈페이지 : http://www.gp2x.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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